동양
캐나다 한인들을 위한 저널: 서로 연결되고, 이야기를 나누며, 다문화 관계와 이민 경험 속 특별한 기쁨과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가는 공간.
캐나다 한인들을 위한 저널: 서로 연결되고, 이야기를 나누며, 다문화 관계와 이민 경험 속 특별한 기쁨과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가는 공간.
나의 아버지는 유년시절 나의 가장 닮고싶은 사람이자 닮기 싫은 사람이었다. 또 나의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자, 여전히 닮기 싫은 사람이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마 내가 모순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아버지의 헌신과 사랑에 감사하지만, 나는 아직 아버지의 모습으로 내 인생을 살아갈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꿈은 아버지처럼 존경할 수 있는
동트기 전의 쇼핑몰은 낮은 숨을 쉬는 거대한 생물 같았다. 셔터 내려진 매장들의 그림자를 따라, 통로 중앙에 섬처럼 놓인 판매대로 향했다. '어머니의 날'을 위한 단기 임시직, 밴쿠버 한인 커뮤니티를 통해 구한 일이었다. 오랫동안 '어버이날'에 익숙했던 나에게 '어머니 날'이라는 단어는 아직도 조금 낯설었지만,
밴쿠버에 살면서 매일같이 마주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스몰톡(Small Talk)'이다. 계산대 앞에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하다못해 바에 잠시 앉아있을 때도 사람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온다. 처음에는 이런 가벼운 대화가 계속되는 상황에 어쩔 줄 몰라 당황했다. 대게 나는 'nice, great! thank you' 라며 기계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오늘은 무지했던 지난날의 저에 대해 고백하려 합니다. 한 특정 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한순간에 타국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실로 큰 결심과 용기를 동반하는 일일 것입니다. 저는 그 막막함과 끊임없이 부딪혀야 하는 기분을 뼈저리게 압니다.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다시 새로운 현실에 부딪혀야 하는 그 반복을 말입니다. 어쩌면 모국의 문화만을 고집한다면 겪지
나는 아직도 종종 모국어의 아름다움에 매료될 때가 있다. 이제는 한국에서 지낼 때만큼 일상에서 모국어를 마주할 일이 자주 없지만, 나는 지금도 인터넷을 통해 한국의 매거진과 뉴스를 즐겨본다. 그러면 남편이 언젠가 한국에 대해 궁금해할 때 어깨를 으쓱거리며 몇 마디 덧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이후에 내가 또 평생 다른 언어를
오월의 첫 주말 아침, 낮은 함성이 창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단잠의 고요를 깨뜨렸다. 우리가 사는 스튜디오의 창문은 이 도시의 오랜 시간을 기억하는 노인처럼, 칠이 벗겨진 거친 살갗을 문지를 때마다 날카로운 신음과 함께 더디게 열리곤 했다. 그 소음의 침입이 잠결의 신경을 할퀼 뻔 했으나, 이내 길들지 않은 호기심이 되어 우리 부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