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는 나를 다섯 살 때까지 업었다고 했다. 내가 첫 돌이 되던 해 황달이 심해, 돌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걸었다고 들었다. 나는 걸음마뿐 아니라 걸음걸이도 확실히 또래에 비해 느렸다. 사실 걸음만 느린 것이 아니고 행동 자체가 느린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특히 외출 준비를 할 때면 ‘빨리, 빨리’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 ‘빨리’라는 말은 유독 나의 호흡을 가쁘게 만들곤 했다.
책도 느리게 읽었고, 밥도 느리게 먹었다. 책은 느리게 읽어야 전체를 이해할 수 있었고, 밥은 느리게 먹어야 소화가 잘 되었다. 사실 말도 너무 느렸다. 말은 느리게 해야 실수를 덜 할 수 있었는데, 어쨌든 나는 전반적으로 모든 것이 느렸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에는 집집마다 유선 전화기가 있었다. 수줍음이 많던 내가 전화를 받을 때면, 어떤 성미 급한 어른들은 더딘 내 말투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나의 느림은 한국 사회의 속도에 비추어 종종 부족함으로 해석되곤 했다. 그래서 늘 계획과 행동이 빠른 친구들이 부러웠다. 여러 일이 한꺼번에 몰려들 때면 눈앞이 캄캄해지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어른이 된 지금도 시간 약속에 관한 큰 압박이 있다. 약속 시간에 조금이라도 느리게 도착할 바에야, 차라리 훨씬 일찍 도착해야지. 느린 도시 밴쿠버에 와서도 한국의 시간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나에게 남편은 그럴 때마다 조금 차분해져도 괜찮다고 말한다.
밴쿠버에 도착한 첫 달, 나는 거의 매일 아침 코퀴틀람에서 잉글리쉬 베이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스타벅스에서 따뜻한 커피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벤치에 앉으면, 복잡했던 마음 위로 바다의 고요함이 천천히 스며드는 듯했다. 이른 아침의 해변은 저마다의 시간을 누리는 이들로 채워졌다. 타월 한 장에 몸을 누이고 책장을 넘기는 사람, 물결이 닿는 모래 위를 맨발로 천천히 거니는 노인, 겅중거리며 주인을 따르는 크고 작은 강아지들. 가끔은 낮게 깔리는 바다 안개 너머로 희미한 산의 윤곽이 보였고, 멀리서 들려오는 둔중한 뱃고동 소리가 젖은 공기 속에 낮게 울렸다. 표정은 제각각 달랐지만, 서두름 없는 그들의 몸짓과 눈빛 속에는 닮은꼴의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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