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저녁, 나는 다음 날 남편이 먹을 점심 도시락을 미리 준비한다. 메뉴는 대게 파스타나 샐러드, 혹은 밥과 몇 가지 반찬을 돌려가며 하는데, 크론병이 있는 남편에게 마늘과 파 종류는 좋지 않아 요리에는 최소한의 양념만 사용해야 한다. 맛을 내는 데 제약이 따르지만, 다행히 캐나다인 남편은 다른 무엇보다 쌀밥을 좋아한다. 나는 갓 지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을 그토록 맛있게 먹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때문에 나는 주기적으로 H-MART나 T&T에 들러 쌀을 산다. 베트남이나 일본산 쌀이 내가 어릴 적부터 먹어온 한국 쌀보다 훨씬 저렴한 편이라, 그때그때 더 저렴한 쪽을 고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입안에 맴도는 은은한 단맛과 씹을수록 느껴지는 찰기는, 내가 기억하는 한국 쌀의 그것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밥솥에 쌀을 올리고 30분쯤 지나면, ‘취사 완료’를 알리는 알람 소리와 함께 달콤하고 고소한 밥 냄새가 집 안에 퍼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다. 밴쿠버에 온 후로, 나는 이 익숙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밥 냄새를 맡을 때마다 자주 한국을 생각한다.
우리는 가끔 이른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선다. 밴쿠버의 4월, 저녁 7시는 아직 해가 길어 마치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하늘 높이 빽빽하게 솟은 침엽수들 사이로 부서지는 저녁 햇살, 끼룩거리며 낮게 나는 갈매기 소리, 길가에 늘어선 다양한 국적의 레스토랑에서 풍겨 나오는 이국적인 향신료 냄새. 그리고 귓가를 스쳐 가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의 조각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만드는 이곳의 저녁 풍경은, 내가 기억하는 한국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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