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무지했던 지난날의 저에 대해 고백하려 합니다.

한 특정 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한순간에 타국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실로 큰 결심과 용기를 동반하는 일일 것입니다. 저는 그 막막함과 끊임없이 부딪혀야 하는 기분을 뼈저리게 압니다.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다시 새로운 현실에 부딪혀야 하는 그 반복을 말입니다. 어쩌면 모국의 문화만을 고집한다면 겪지 않아도 될 희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밴쿠버로의 이주가 남편이라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낯선 땅에서 수없이 넘어져야 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문화의 허들과 매 순간 마주하는 언어의 허들 앞에서 넘어지고 있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는 밴쿠버에 오기 전까지 소위 ‘애국심’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한국 사회에서 젊은 날을 보내는 동안 기성세대가 공고히 해온 남성우월주의적 시선, 타인을 향한 끊임없는 평가와 비교, 그리고 외모가 전부인 양 여겨지는 외모지상주의의 무게에 이미 깊이 지쳐, 제가 태어난 나라 자체에 회의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른을 넘어 다문화 국가인 이곳 밴쿠버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이전에는 없던 어떤 자긍심 같은 것이 제 안에서 샘솟는 것을 느꼈습니다. 비단 저만의 경험은 아닌 듯, 이곳 한국인 커뮤니티에서도 이주 후 예기치 않게 피어오른 ‘애국심’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화두에 오르곤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제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았을 때, 그것은 순수한 애국심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자격지심’의 또 다른 얼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슬픈 깨달음에 이르렀습니다.

소위 ‘트렌드를 선도한다’는 패션 마케팅 회사에서의 2년은, 제 능력이나 열정보다는 외모가 더 자주 평가의 도마 위에 오르던 시간이었습니다. 민낯으로 아침 회의에 들어서면 "어디 아프냐"거나 "자기 관리는 기본 아니냐"는 걱정을 빙자한 지적이 당연하다는 듯 날아들었고, 체중계 숫자가 조금이라도 늘어난 날에는 제 존재 자체가 게으름의 증거라도 되는 양 싸늘한 시선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런 일상적인 평가와 보이지 않는 압박감은 매일같이 제 자존감을 좀먹었고, 저는 점점 더 제 본연의 모습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그 깊은 결핍을 채우려 발버둥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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